- 제목: 미녀는 괴로워
- 개봉: 2006. 12. 14.
- 감독: 김용화
- 출연: 김아중(강한나/제니 역), 주진모(한상준 역), 성동일 (최 사장 역), 김현숙 (박정민 역), 임현식(한나 아빠 역), 이한위(이공학 역) 등.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신도 믿고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여기 간절한 마음으로 점쟁이를 찾아온 여성이 있습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속 그녀는 사주를 볼 겸 한 남자와의 궁합도 보려고 합니다. 점쟁이는 그녀의 미래가 암울하다며 궁합 상대 남자와도 절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점괘를 내놓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나쁜 결과를 듣고 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슬퍼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여성은 오히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라며 그의 말을 부정합니다. 자신의 말이 맞다며 우기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쉬던 점쟁이는 그녀에게 부적을 하나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 남자에게 지니게 하라고 알려줍니다. 그는 아마도 그녀를 부적으로나마 얼른 달래서 집에 보내고싶은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그에게 절을 올리려던 그녀는 자신의 육중한 몸 때문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집니다. 덕분에 점쟁이는 부적 안료로 쓰던 빨간 액체를 얼굴에 뒤집어쓰게 됩니다. 미안한 마음에 그의 얼굴을 닦아주던 그녀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데 이 눈치 없는 그녀가 바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한나(김아중)입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미녀는 괴로워>에서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그녀의 직업은 가수입니다. 하지만 대중 앞에 나서서 노래하는 일반적인 가수가 아닙니다. 그녀는 인기 가수 '아미'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고 있는 대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노래 실력을 밝히지 못하고 남의 대역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비참할 수도 있는데 한나는 그다지 자신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반대로 그녀는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인데요. 그녀에게는 아마 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 배경이 되는 장소는 공연장입니다. 오늘 아미의 콘서트가 있는 날입니다. 한나는 본인이 무대에 서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인기 스타처럼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고 무대 뒤에 마련된 마이크 앞에 섭니다. 그녀는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면 마치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발휘해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흥겹게 만듭니다. 댄스 파트 부분에서는 그녀 또한 춤을 추며 호흡을 맞춥니다. 그런데 그녀를 받치고 있던 무대는 그녀의 열정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한나가 춤을 추기 위해 발을 몇 번 구르자 나무 바닥은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버립니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꺼져버린 그녀를 보고 당황한 사람은 콘서트 진행을 지켜보고 있던 상준(주진모)이었습니다.
한나가 추락하는 바람에 노래가 끊겨 공연이 중단될 뻔 하지만 상준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가 잠시 무대 특수효과 등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상준은 화면에서 사라진 한나를 애타게 찾습니다. 다행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선 그녀는 무사해 보입니다. 사실 한나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상준을 오래전부터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초반부에 그녀가 점쟁이에게 들고 갔던 상대 남자 사진의 정체도 바로 상준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입니다. 콘서트가 끝난 후 상준은 수고한 한나부터 찾으며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포옹합니다. 황홀해진 한나는 그런 상준을 다시 한번 껴안아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바로 그녀가 늘 긍정적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밝혀집니다. 자신의 외모를 보고 비웃기만 했던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했던 그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생기가 넘쳤던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주변 상황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고 오로지 상대만 바라보게 된다던데 그녀가 바로 그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준도 한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요?
황홀한 꿈일 뿐인 사랑.
한나는 코러스를 맡고 있는 친구 정민(김현숙)과 함께 고깃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중입니다. 막역한 사이였던 둘 사이의 대화는 굉장히 직설적입니다. 정민은 상준과의 즐거운 공상에 빠진 한나에게 명대사를 남깁니다. 광고 포스터 속 예쁜 미인들은 명품, 평범한 자신은 진품, 그리고 뚱뚱한 한나는 반품대상이란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해본 적은 있냐는 정민의 물음에 한나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 회상 장면에서 <미녀는 괴로워>의 주연인 한나가 사랑에 자신감이 없어진 이유가 밝혀집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아득한 옛날 기억입니다. 그것이 좋은 기억일 수도 있지만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 잊지못할 것이 돼버리기도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한나는 후자에 속합니다. 순진한 한나의 첫사랑은 그녀의 마음을 이용했던 나쁜 남자였습니다. 그는 한나의 돈이 목적이었을 뿐 뚱뚱한 그녀를 한심하게 여기는 부류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합니다. 결국 그녀는 첫사랑과 헤어진 뒤 그가 그녀에게 팔았던 다이어트 약을 과량 복용하다가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합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사랑도 다이어트도 자신에게 모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상준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애쓰지만 계속되는 그의 응원과 호의에 자꾸 기대감이 커집니다.
산산조각 난 행복.
<미녀는 괴로워>의 중요 사건은 상준의 생일파티가 열린 한 클럽에서 발생합니다. 아미는 상준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나를 질투해 그녀에게 상준이 보낸 선물인 척 빨간 드레스 한 벌을 보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나는 그것을 입고 파티에 갑니다. 그런데 아미 역시 한나와 같은 드레스를 입고 상준 곁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은 아미가 뚱뚱한 한나를 조롱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날씬한 아미와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에 한나는 민망해하며 화장실로 이동합니다.
화장실 칸 안에 한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미와 상준은 살벌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는 한나를 자극한 아미를 향해 한나가 없으면 둘 다 인생 망하는 것이라고 화를 냅니다. 그는 한나를 시샘하는 아미에게 본인은 단지 한나를 이용하는 것뿐이라며 억지로 칭찬을 해서라도 한나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붙잡아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진심을 알아버린 한나는 숨죽여 울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는 이후 말도 없이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성형외과로 가서 지방 흡입을 포함한 전신 성형을 받기로 합니다. 한나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비용과 목숨을 담보하는 대수술에 의사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한나는 그의 약점을 이용해 결국 수술 약속을 받아냅니다. 몇 번의 재수술과 강도 높은 운동을 통해 결국 엄청난 미인으로 다시 태어난 한나.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는 완전히 달라진 시선에 낯설어하면서도 행복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격세지감을 느끼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처음 봤던 2006년과 최근 2021년을 비교해보면 스스로도 과거와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가볍게 다루지 못할 여성 외모에 대한 평가나 자살, 반려동물 유기 등이 영화 속에서 별 거리낌 없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특유의 유머스럽고 코믹한 분위기로 그러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넘어가긴 했지만 지금 시선으로 본다면 불편하게 느껴질 부분이 많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녀는 괴로워> 영화 ost 였던 김아중의 '마리아' 등은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냅니다. 강한나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 배우 김아중 씨가 실제로 보컬 트레이너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ost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